사기종인(舍己從人)이란 자기를 버리고 타인을 좇는다, 즉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선량한 행실을 따른다는 뜻의 성어입니다. 이런 배움의 자세는 개인뿐 아니라 기업의 발전에도 꼭 필요합니다. 비록 배움의 상대가 같은 업계의 경쟁사일지라도 말이지요. 이런 활동을 우리는 ‘벤치마킹’이라고 부릅니다.
벤치마크의 정의
벤치마크란, ‘기업이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다른 회사나 업계의 우수 사례를 배우고 참고하는 경영 기법’을 말합니다. 벤치마크라는 말은 낯설게 들려도 ‘벤치마킹’이라는 말은 익숙하시죠? 벤치마크(benchmark)는 원래 영미권에서 토지를 측량할 때 참고하기 위해 땅에 박는 돌을 뜻하는 단어였습니다. 우리말로는 ‘측량 점’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벤치마크를 세우거나 이용하는 활동을 일컬어 ‘벤치마킹(benchmarking)’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컴퓨터 분야에서 여러 전자기기의 성능을 비교∙평가하는 활동을 벤치마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이처럼 경쟁사 분석과 성과 비교를 통해 혁신과 발전을 도모하면서 벤치마크라는 말이 지금의 경영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벤치마크의 시초
1959년에 복사기를 발명한 제록스(Xerox) 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복사기 시장의 일인자였습니다. 미국에서는 제록스라는 이름 자체가 ‘복사하다’는 뜻의 동사로 쓰일 정도였지요. 그러나 80년대에 들어 일본의 후발주자들이 더 좋은 성능의 저렴한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제록스는 기업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급기야 시장 점유율이 35%까지 하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 이상 업계 최고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인 제록스사의 경영진은 같은 업계 경쟁사는 물론 다른 산업군의 기업들까지 참고하며 회사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캐논을 비롯한 경쟁사의 제품들을 분해해 부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우수한 기술을 배웠고, 물류 방면에서는 엘엘빈이라는 의류 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어 효율적인 유통 방식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 제록스는 생산 비용을 반으로 절감하면서 불량률을 78% 줄이고 복사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이렇게 호시절을 뒤로하고 내리막을 걷다가 타 기업들을 보고 배우면서 화려하게 부활한 제록스는 벤치마크를 경영 기법으로 활용해 혁신을 이룬 최초의 기업이었습니다.
기업이 본받고자 하는 다른 기업의 활동을 벤치마크로 삼아, 자사의 성과와 방식을 비교하는 벤치마킹은 제품의 품질 개선, 생산 공정의 효율성 증대, 기술력 강화 등 어떤 영역에나 도입할 수 있습니다. 벤치마킹의 목적은 더 나은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더 나은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물론 기업만이 아니라 개인과 비영리 단체 등 누구나, 어떤 조직이나 벤치마킹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도심에 자리한 고가 공원 서울로 7017은 서울시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벤치마킹해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은 프로젝트로 유명합니다(자세한 내용을 확인하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벤치마크, 왜 중요할까?
벤치마크 활용의 가장 큰 장점은 선행자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므로 목표 달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미 같은 목표를 이뤘던 기업이 있기 때문에 옳은 길이 아닐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또한, 벤치마킹을 통해 업계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파악하면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가 수월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수많은 기업이 밤낮없이 기술을 연구 개발하고, 서비스를 개선하며, 혁신을 추구합니다. 기업들이 이렇게 발전하면 해당 기업들이 속한 업계의 ‘평균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지요. 이때 바깥세상을 둘러보지 않고 기존의 방식만 고수하면 아무리 성실하게 제품을 생산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소비자들의 일반적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고인 물이 되기에 십상입니다. 그 예시로,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까지 휴대폰 시장은 여전히 종래의 피처폰을 생산하던 전자회사들의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점점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갔고, 언젠가부터 소비자들은 인터넷 서핑을 하고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자유롭게 실행하며 실제 카메라에서처럼 선명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기를 ‘평범’한 휴대폰이라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천하무적일 것만 같던 피처폰 제조사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지요. 그 피처폰 제조사들이 업계의 혁신 기술을 제때 벤치마크했었다면 지금 우리는 좀 더 다양한 스마트폰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벤치마크와 KPI,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앞서 발행된 글에서 우리는 KPI가 목표 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에 대한 달성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배웠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기준점이라, 왠지 벤치마크와 같은 말처럼 들리지 않나요? 실제로 KPI와 벤치마크는 같은 개념으로 혼동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벤치마크와 KPI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을 기준점으로 활용하는가’입니다. KPI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세운 전략 목표를 기준점으로 내세웁니다. 반면, 벤치마크는 타 기업을 기준점으로 활용합니다. 그러나 의미가 다르다고 해서 KPI와 벤치마크가 서로 배타적인 개념인 것은 아닙니다.
KPI를 설정할 때 우리는 성과를 달성할 목표나 한계 수준을 설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산출된 결과가 바람직한 수준인지, 또는 노력이 더 필요한 수준인지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이때 다른 기업들을 벤치마킹해 기준점으로 활용하면 현실적이면서도 도전 가치가 있는 목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요즘 부동산 임대업의 새로운 개념으로 떠오르는 공유 오피스를 사례로 들어봅시다. 한 공유 오피스 업체가 고객 입주사들의 퇴실률 하한선 KPI를 설정하려고 합니다. 물론 이상적인 수치는 0%겠지만 이는 현실적인 수치가 아닙니다. 우선 공유 오피스의 주 입주 고객은 정식으로 사옥을 마련하거나, 사무실 운영에 자원을 투입할 여력이 안 되는 신생 업체, 소규모 기업, 개인사업자 등입니다. 직원이 많지 않으면 자체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할 때 드는 통신, 냉난방, 청소, 비품 관리 비용보다 이 모든 관리를 대행해주는 공유 오피스에 입주하는 비용이 저렴하지만, 공유 오피스는 직원 한 사람당 내야 하는 비용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임직원이 늘어날수록 직접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공유 오피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가 회사의 규모가 커지면 자체 사무실을 마련해 떠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공유 오피스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KPI를 0%로 설정하면 오히려 목표 달성에 실패함은 물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것입니다. 이럴 때 같은 지역에서 가장 실적이 우수한 여타 공유 오피스의 퇴실률을 벤치마크로 활용하면 좀 더 현실적인 KPI를 설정할 수 있습니다. 이 수치에는 이미 공유 오피스라는 사업과 지역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으니까요.
벤치마크가 KPI와 어떻게 다른지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해 이번에는 그래프를 함께 살펴볼까요?
제시된 그래프는 2015년 프랑스 정부에서 공개한 새로운 부의 척도 10개 항목에 대한 국가별 달성도를 보여줍니다. 링크를 클릭하여 화면 왼쪽의 드롭다운 메뉴에서 원하는 나라를, 아래 지도에서는 벤치마크할 나라를 골라봅시다(해당 이미지에 보이는 선택된 국가는 아일랜드, 벤치마크할 국가는 프랑스입니다). 그래프 보는 방법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상단의 아이콘 10개는 각각 고용률, 국채 총액, 이산화탄소 배출량, 여성과 남성의 건강 등의 지표를 의미합니다. 화면 중앙의 막대는 이러한 각 지표에 대한 2006년부터 2015년까지의 달성도를 보여줍니다. 굵고 까만 줄은 선택 국가의 달성도, 연회색은 해당 지표에 대한 벤치마크 국가와 선택 국가의 공통 영역, 진회색은 선택 국가보다 벤치마크 국가의 달성도가 높은 영역, 푸른색은 벤치마크 국가보다 선택 국가의 달성도가 높은 영역을 나타냅니다. 아일랜드 정부가 프랑스를 벤치마크해 국가를 더 굳건하게 만든다는 목표 아래 이 그래프를 참조한다면, 10개 지표 중에서도 진회색 영역이 유독 넓은 이산화탄소 배출량과(CO2 아이콘) 국내 총연구비 지출을(삼각플라스크 아이콘) 개선함으로써 국가의 지표를 향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벤치마크에 대해 배워보았습니다. 정리하자면 벤치마크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타 뛰어난 기업이나 조직의 우수 사례를 기준점으로 삼는 경영 기법입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기준점이라는 면에서 KPI와 비슷하게 닮았으나, KPI는 기업 내부의 전략 목표를, 벤치마크는 다른 기업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점이 다르지요. 이렇게 다른 기업의 혁신과 뛰어난 성과를 벤치마킹하면 업계 안에서 기업 경쟁력을 유지하고, 이미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방식을 따름으로써 위험 부담을 완화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벤치마크의 유형과 장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